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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관룡산 관룡사 일원' 명승 지정(국민문화신문) 최정수 기자 = 창녕군(군수 성낙인)은 올해 명승으로 지정 신청한 '창녕 관룡산 관룡사 일원'이 명승으로 지정됐다고 밝혔다. 신라시대 고찰로 알려진 관룡사의 많은 불교 문화유산과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관룡산의 수려한 경관 등이 조화를 이뤄 경관적·문화적·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이번에 '창녕 관룡산 관룡사 일원'이 명승으로 지정됐다.창녕군은 지난 3월 '창녕 관룡사 목조 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의 보물 승격과 지난 9월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이어 '창녕 관룡산 관룡사 일원'이 명승으로 지정되는 겹경사를 맞았다.명승으로 지정된 '창녕 관룡산 관룡사 일원'인 관룡사에는 국가지정문화재 7건과 도지정문화재 5건 등 많은 불교 문화유산이 있다. 특히 반야의 세계로 향하는 용이 이끄는 배라는 뜻의 '반야용선'을 재현한 듯한 용선대는 불자뿐 아니라 많은 방문객이 찾는 해맞이 명소로 알려져 있다.성낙인 군수는 "올해는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와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된 '창녕 관룡산 관룡사 일원' 등 창녕의 소중한 문화유산의 가치를 다시금 확인시키는 한 해가 됐다"라며, "2024년에는 창녕의 문화유산을 널리 알려 세계적인 명소로 만드는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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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밥상 천년의 밥상, 경주 황금 어장한국인의 밥상. 사진 : KBS1 TV (국민문화신문) 최정수 기자 = 오랜 세월이 빚어낸 원시의 땅 위로 역사가 호흡하는 도시, 경주! 그 포근하고 풍요로운 터전에서 자연과 어울려 살아온 사람들! 약 1억 년 전, 백악기에 형성된 경상분지는 공룡의 흔적만큼이나 인류의 흔적도 짙게 남아 있는 땅이다. 울진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진 고래 사냥 모습, 사람이 먹은 조개껍질의 무덤, 패총과 다양한 토기 모두 그 옛날 인류가 먹고 살아온 삶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긴 세월에 걸쳐 사람과 융화된 땅은 지금까지도 풍성한 먹거리를 내어주고 있는데. 특히 한 면을 바다에 접한 경주는 내륙과 바다의 자원을 모두 누리며 풍부한 식문화를 발전시켜온 지역이다. 모태처럼 아늑한 자연에 안겨 살아온 경주 사람들의 오래된 먹거리를 만나본다! 해녀들의 오래된 텃밭, 경주 바다!– 경상북도 경주시 신라시대에는 해인(海人)들이 허리에 새끼줄을 묶고 물질을 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물질은 인류가 바다에서 먹거리를 찾아 헤매기 시작한 원시시대부터 이어져 온 어업방식이다. 이 원시 어업의 후예들이 경주에도 남아 있다는데. 바로 읍천마을의 할머니 해녀들! 평균 나이 70세가 넘는 읍천 해녀들은 물에 들어가면 아팠던 몸도 잊을 정도로 펄펄 기운이 난다는데. 이들이 활동하는 주 무대는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기둥 모양의 암석, 주상절리가 자리한 곳! 해녀들에게만 허락된 조업 구역이라 다른 이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유독 크고 튼실한 해산물들을 만나볼 수 있는 장소란다. 특히 음력 6월이 지나서야만 제맛이 든다는 귀한 해조류 ‘곰피’가 읍천 해녀들의 자랑이다. 떫은맛이 나는 곰피는 수확 즉시 햇볕에 잘 말렸다가 데쳐 나물로 먹었다는데. 콩나물과 함께 갖은양념에 무쳐낸 곰피나물을 밥에 넣고 비비면 해녀들이 가장 좋아하는 참이 완성된다. 해녀들의 잔칫날에는 빠지지 않는다는 해삼초무침부터 속이 꽉 찬 성게로 끓이는 호박국까지. 보약이 따로 없다는 건강한 먹거리들로 한 상을 차려 낸 읍천 해녀들. 든든하게 보신도 했으니, 앞으로도 엄마 품 같은 경주 바다를 자유롭게 누비고 싶다는데. 평생 바다 텃밭을 일구며 살아온 읍천의 인어할매들을 만나러 가본다. 신라시대부터 이어진 황금어장에 가다! – 경상북도 경주시 통일신라시대의 사찰 감은사를 넘어 동쪽으로 향하면 쪽빛의 동해와 경주의 최대 항구, 감포항이 나타난다. 도시 전체가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알려진 경주, 그러나 바다가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데. 쉴 틈 없이 고깃배들이 오고 가는 감포 앞바다는 긴 세월 어민들의 곳간이 되어준 소중한 터전이다. 매일 아침 동해의 웅장한 해돋이를 구경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김철곤 선장에게도 감포 앞바다는 보물 상자나 마찬가지란다. 미리 쳐둔 그물에 정어리부터 때 이르게 찾아온 대물, 삼치와 방어까지 걸려들어 만선의 기쁨 제대로 누린 김 선장! 김 선장의 만선 소식에 아내 김순기 씨도 싱글벙글, 웃음꽃이 피었다. 이렇게 기쁜 날에는 온 가족이 모여 한 끼를 나눈다는데. 근처에 사는 김 선장의 두 누이까지 거들어 추억의 밥상을 차렸다. 푹 익은 삼치를 잘 발라 살코기만 넣고 끓이는 미역국은 어린 시절 자주 먹던 음식! 어렵던 옛날, 미역은 중요한 밑반찬 거리였다. 미역 수확 철이면 미역 줄기로 장아찌를 담가 1년 내내 두고두고 먹었다는데. 거기에 김 선장이 가장 좋아하는 방어회미역무침까지 더하면, 뱃일로 허기진 김 선장을 위한 바다 한 상이 차려진다. 경주 바다의 풍성함을 맛볼 수 있는 김 선장네에 찾아간다! 천 년 전의 맛을 찾아서! – 경상북도 경주시 지난 2017년에 재발굴이 완료된 서봉총에서는 각종 어패류와 고등어, 방어 등 다양한 생선이 발굴되며 신라시대의 식문화에 대한 실마리가 발견되었다. 다양한 기록이 남은 조선의 식문화에 비해 신라 음식에 대한 문헌은 많지 않기에 더 소중한 성과였는데. 이처럼 적은 단서들을 찾아 신라 음식을 연구해 온 사람이 있다. 바로 신라 음식 연구가 차은정 씨! 그녀는 오래된 유적과 문헌은 물론 경주 지역의 향토 음식들을 찾아다니며 신라 음식의 흔적을 쫓고 있다는데. 발효 음식을 전공한 차은정 씨가 가장 주의 깊게 살피는 것은 신라시대의 ‘장’ 문화! 차은정 씨는 그 흔적을 경북 지역의 특별한 토속 장, 시금장에서 찾았다. 보리등겨를 빻은 가루에 감주, 조청, 삶은 콩 등 다양한 재료를 넣고 숙성시켜 만드는 시금장은 시큼한 맛이 특징이라는데. 차은정 씨가 직접 찾은 자료를 바탕으로 재현한 신라 음식은 이처럼 경주 지역의 향토성을 간직하고 있다. 신라송자로 불렸다는 잣을 이용해 만든 문어대하잣즙과 경북 지역의 대표 향신료 초피가루를 사용한 열무침채 등 당시에 사용된 먹거리가 주재료! 신라 음식에 대한 열정으로 재현해 낸 천 년 전의 성찬을 맛본다. 방송 : 2023년 8월 31일 (목) 오후 7시 40분 KBS 1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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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뱃놀이 축제, 성대한 개막개막식퍼포먼스 3mih공연 군악대 (국민문화신문) 유석윤 기자 = 수도권 대표 해양축제 ‘제12회 화성 뱃놀이 축제’가 17일 전곡항에서 성대한 개막식을 가졌다. 3년 만에 열리는 이번 뱃놀이 축제는 49척에 이르는 승선체험부터 어촌체험, 공연, 피크닉까지 준비돼 관광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고급 요트와 유람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해적선 등 크고 작은 배들이 전곡항 앞바다와 제부도를 오가며 서해바다의 매력을 소개했으며, 하늘 위로는 케이블카가 관광객들에게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했다. 특히 시민과 전문 댄서 300여 명이 참여한 바람의 사신단 댄스 퍼레이드는 플래시몹과 함께 항해의 출항을 알리는 깃발 퍼포먼스를 펼치며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행사장 한 편에 조성된 피크닉 장에서는 낭만 가득한 추억 만들기에 나선 가족과 연인들로 활기가 넘쳤으며, 즉석에서 신청곡을 소개해 주는 뱃놀이 라이브 스튜디오는 관광객들의 열띤 참여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 오전 11시 30분 서해바다를 배경으로 마련된 메인 무대에서 열린 개막식은 해군 2함대의 웅장한 군악대 공연으로 시작됐다. 이어 MIH예술단 스트리트 댄스팀의 오프닝 공연과 정명근 화성시장의 개회사, 주요 내빈 축사 등이 이어졌으며, 시장과 내빈이 함께 조타키를 활용한 개막 퍼포먼스가 대미를 장식했다. 정명근 화성시장은 개회사를 통해 “1천 2백년 전 통일신라시대 실크로드의 관문이었던 당성을 배경으로 축제를 열게 돼 매우 뜻깊다”라며, “과거 실크로드의 영광을 재현하고 2천만 수도권 대표 해양축제로 사랑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제12회 화성 뱃놀이 축제의 체험 프로그램 및 공연과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www.화성뱃놀이축제.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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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다큐 온> 한국차, 청춘을 만나다.미국 출신의 방송인 타일러 사시사철 푸름을 자랑하는 보성 녹차 밭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우리의 차 문화. 그 동안 한국 차는 사찰이나 격조 높은 예술인, 전문 다도인 등 특별한 이들만이 즐기는 것처럼 여겨졌다. 대중들이 다가가기에 까다롭고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졌던 한국 차에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커피에 밀려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었던 녹차에 젊은 세대 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관심에 부응하듯 우리의 차 문화도 더욱 젊어지고 있다. 녹차를 이용한 다양하고 새로운 메뉴 개발은 물론 젊은이들의 핫 플레이스가 된 녹차 밭, 다양한 우리 차를 즐기며 소통할 수 있는 차(茶) 전문 카페까지 오랜 시간 한국에서 생활해 왔고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하는 외국인 블레어와 타일러의 시선으로 달라진 한국 차 문화를 조명해 본다. 한국차愛 빠진 푸른 눈의 청년, 블레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우리에게 친숙한 미국 출신의 방송인 타일러! 한국을 사랑하는 만큼 한국 문화에도 관심이 많은 그가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건 바로 한국의 차(茶)! 그가 한국 차 문화에 푹 빠져 있는 호주 출신 친구, 블레어를 만났다. 호주에 있을 때부터 차를 즐겨 마셨고 요즘에는 매일같이 녹차를 마시며 힐링한다는 차(茶) 마니아 블레어, 그들이 말하는 한국 차의 매력은 무엇일까. 블레어, 전통의 맥을 잇는 보성 녹차 밭을 찾다 사시사철 푸름을 자랑하는 보성 녹차 밭을 찾은 블레어. 우리나라 최고 녹차 생산지인 전남 보성에서 블레어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조선 중종시대 학자이자 화가였던 양팽손의 보성 종가(宗家)다. 430년 된 야생 차나무 ‘고차수’가 있는 이곳은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나흘 동안 머물며 차를 마시고 지친 몸을 쉬어간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고택 곳곳에 남아 있는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만나보고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 떡차를 마시며 수백 년 째 이어온 녹차의 향기에 빠져본다. 자연이 만들어낸 향, 하동 야생 녹차 산비탈과 바위틈마다 듬성듬성 펼쳐진 경남 하동의 야생 녹차밭!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된 하동 야생차밭은 신라시대 김대렴이 가져온 녹차 씨를 이곳에 심은 이후 천 년 넘게 자연의 힘으로 이어져온 곳이다. 북풍의 찬 기운을 막아주는 지리산과 섬진강에서 불어온 따뜻한 남풍이 만들어낸 하동 야생 녹차. 이곳을 찾은 블레어는 한 폭의 그림과 같은 녹차 밭 풍경에 빠져들고 15년 된 녹차를 맛보며 한국 차의 그윽하고 독특한 향을 즐긴다. 녹차! 젊어지다 미술관에서만 봐왔던 큐레이터와 도슨트가 카페에 나타났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한국 차(茶) 카페! 이곳에 가면 어렵게만 느껴졌던 한국 차에 대해 알려주고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차를 골라주는 차 도슨트가 있다. 바쁜 일상 속 휴식을 선물 받는 느낌이라는 이 공간을 즐겨 찾는 이들은 바로 2~30대 젊은이들! 트렌드에 민감하고 변화에 익숙한 이들이 차 카페를 찾고 우리 차를 마시며 소통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젊은이들 사이에서 부는 젊어진 녹차 바람을 만나본다. 청춘, 그들이 차를 찾는 이유!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든 ‘차’만 있으면 되는 모임! 간편한 다구를 배낭에 짊어지고 만나는 젊은이들이 있다. 낮이든 밤이든 야외, 실내 가릴 것 없이 차를 좋아하는 사람끼리 오로지 ‘차’를 마시기 위해 만난다는 이들, ‘술’ 약속보다 ‘차’ 모임이 더 좋다는 20대 김영성씨가 이 모임의 시작이다. 최근에는 ‘차’ 커뮤니티 앱을 만들어서 활동하며 더 많은 청춘들과 함께 하고 있는 김영성씨, 그에게 우리의 차는 어떤 의미일까 녹차가 있어 더욱 핫!해진 공간 전통 차와 함께 해서 더욱 핫~한 공간이 있다! 최근 SNS에서 포토 명소로 뜨고 있는 하동 녹차 밭과 보성 한옥카페! 이미 2-30대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사진 맛집’이다. 이곳을 찾는 젊은이들은 다구 세트를 빌려 녹차 밭에서 사진을 찍고 대화도 나누며 그들만을 위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100년 된 고택에서 우리 차와 녹차 디저트를 먹으며 전통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공간을 즐긴다. 오랜 전통의 명맥을 이어오면서 이제 트렌드와 새로움을 입은 녹차! 2022년, 우리 차의 변신을 위한 젊은 청춘들의 다양한 시도를 만나본다. 2022년 4월 1일 (금) 밤 10시 50분 KBS1TV 방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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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유적 '할미산성' 국가사적 지정 추진용인시가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한 할미산성 팔각 건물지 모습.(사진제공=용인시) (용인=국민문화신문) 구명석 기자=용인시가 삼국시대 문화유적인 할미산성의 국가 사적 지정을 추진 중이라고 28일 밝혔다. 할미산성은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 할미산에 위치한 신라시대의 산성(山城)이다. 6세기 중반 신라가 한강 유역 진출 과정에서 축성했으며, 신라시대의 산성 축조 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아 지난 2007년 경기도 기념물 제215호로 지정됐다. 시는 지난 2010년부터 토지매입, 발굴조사, 성벽 정비 등 할미산성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7차례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장방형 건물지, 집수시설, 팔각형 건물지 등 산성의 위계를 보여주는 중요 유구가 출토됐다. 시는 이 유물들을 통해 할미산성이 신라의 한강 유역 진출을 위한 배후 거점 역할을 했다는 것과 동시에 고대 용인이 군사·교통의 요충지였음을 증명하는 자료로 보고 있다. 지난 2018년부터는 할미산성의 국가 사적 지정을 위한 연구용역과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이 결과를 토대로 지난 2019년 문화재청에 할미산성의 국가 사적 지정을 신청했다. 특히 지난 11일에는 시의 꾸준한 노력과 오랜 기다림 끝에 문화재청의 현지 조사가 진행됐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 위원장 등 3명으로 이루어진 현지조사단은 이날 할미산성을 둘러보고 국가 사적 지정 기준에 따른 문화재의 가치 평가 등을 조사했다. 할미산성의 국가 사적 지정 여부는 현지 조사 결과와 문화재청의 문화재위원회 회의 등을 거쳐 결정될 예정이다.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한 할미산성 성벽 절개부 모습.(사진제공=용인시) 시는 할미산성이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면 할미산성의 역사적 가치를 널리 알림과 동시에 시의 이미지 제고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할미산성 발굴과 정비에 소요되는 예산의 70%를 국비로 지원받을 수 있어 할미산성의 복원 및 관리가 보다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시는 할미산성의 국가 사적 지적을 위해 현재 유구 정비와 성벽 정비 공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내년 할미산성 발굴조사 10주년을 기념해 학술행사 등을 개최할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국가 사적 지정은 문화재의 역사적 가치, 정비 현황, 향후 계획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려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할미산성의 학술적 가치 규명, 유구 정비 등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한편, 용인시에는 서리고려백자요지(사적 329호), 보정동 고분군(사적 500호), 심곡서원(사적 530호) 등 총 3곳이 국가 사적으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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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함! <에밀레>(재)용인문화재단(이사장 백군기)은 오는 5월 25일 토요일 2시, 5시 총 2회에 걸쳐 뮤지컬 <에밀레>를 용인포은아트홀에 올린다. 천년왕조 신라시대의 역사 콘텐츠를 각색하여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과 희생의 번민을 화려하게 예술적으로 표현한 <에밀레>는 천년의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춤과 음악으로 형상화하여 신라 예술의 진수를 선보인다.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공연 제작 극장 ‘정동극장’의 브랜드 공연인 <에밀레>는 현재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문화센터 공연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작품으로, 이번 용인포은아트홀에서의 공연이 경주가 아닌 곳에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될 것이다. <에밀레>는 천년왕조라 칭하는 신라시대를 배경으로 8세에 등극하여 23세에 요절한 혜공왕의 비극적 탄생 설화와 에밀레종(성덕여왕 신종) 설화를 바탕으로 재창작한 작품으로 이번 작품에서 에밀레는 기존의 설화에서의 어린아이의 모습과는 다르게 가상의 여인으로 등장한다. <에밀레>를 구성하고 있는 8장의 장면들은 탄생, 세월, 대관식, 대립, 사랑, 탐욕, 운명, 귀의 등 각각의 주제를 담고 있으며, 다양한 주제로 그려낸 8장의 장면들은 각 장마다 주제에 맞춰 공간의 변화, 무대 연출, 음악의 변화 등 놓칠 수 없는 볼거리를 선사한다. 이번 공연은 정치적 핍박과 신분적 간극을 넘나드는 ‘혜공’과 ‘에밀레’, 젊은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과 희생을 화려한 퍼포먼스로 승화시킨 아름다운 무대가 될 것이다. 공연 예매 및 문의는 용인문화재단 CS센터(031-260-3355)를 비롯하여 용인문화재단 홈페이지(www.yicf.or.kr)와 인터파크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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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감영 재창조 복원 문화기공식전라북도는 전라감영을 아시아 문화 심장터의 핵심공간으로 조성해나가기 위해 선화당 등 전라감영 복원 건물의 실시설계를 완료하고 오는 16일(목) 14시에 전라감영지(구 도청사 부지)에서 전라감영 재창조 복원공사의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전라감영 복원 시작을 알리는 문화기공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전라북도의 행정을 총괄했던 옛 도청사 건물이 준공된 지 60여년 만에 조선시대 전라남북도 및 제주도를 관할하던 전라감영 재창조 복원 공사를 착수하게 된다.문화기공식은 식전행사(祝願)와 공식행사(告天), 식후행사(團結)로 구성되어 있으며, 흥겨운 설장고 공연으로 행사의 시작을 알리고, 전통의례 절차에 따라 고유제가 봉행되며, 이후 경과보고 및 전라감영의 역사와 복원사업에 대한 간략한 설명도 이어질 예정이다.고유제는 조선시대 전라감영 복원을 추진하는 출발점에서 그 시작을 알리고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행사로, 전라감영 복원 재창조위원회에서 주관을 맡아 추진하고 있다.이와 함께 집을 짓기 전에 지경돌로 그 터를 단단하게 다지는 의례와 놀이인 지졍다기지를 퍼포먼스화 하여 진행될 예정이다.그동안 전라감영 복원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 전라감영 복원 재창조위원회에서 전라감영 공간의 변화에 따른 각 건물별 위치, 시대에 따라 변화는 건물의 형태 등 전라감영 복원사업 추진에 따른 각종 현안 내용에 대해서 논의하였고, 최종 논의된 사항을 전라북도 문화재위원회에 보고하고 그 내용을 실시설계에 반영하였다.복원공사는 총사업비 84억원으로 오는 2019년 12월까지 진행되며, 복원대상은 선화당, 내아, 내아행랑, 관풍각, 연신당, 내삼문, 외행랑 등 전라감영 핵심건물 7동이 공사에 포함되어 복원될 예정이다.아울러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통일신라시대부터 일제강점기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사적 흔적을 어떻게 조성하여 보여줄 것인지에 대해서 논의하여 복원될 건물 활용의 구체적인 방향과 콘텐츠에 대해서는 향후 전라감영 복원 재창조위원회 논의를 거쳐 박제된 공간이 아닌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조성될 예정이다.또한, 전라감영 복원 공사와 함께 전라감영의 완전 복원된 모습을 체험할 수 있도록 최첨단 ICT기술과 접목한 실감형 콘텐츠 제작 사업을 병행 추진할 계획이다.이를 통해 전라감영 일원은 조선시대 감영을 주제로 콘텐츠 체험 공간으로 채워질 예정이며 역사복원과 더불어 관광객을 위한 볼거리 등이 보강될 것으로 보인다.김인태 문화체육관광국장은 “전라감영 복원이 과거 역사와 문화의 중심이었던 전주의 옛 영광을 복원하고 더 큰 자긍심과 미래의 희망이 담긴 핵심적 공간으로 조성되기 위해서 우리 도와 전주시가 함께 협력해서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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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문화심장터 핵심 '전라감영' 복원공사…내달 첫 삽전주시가 추진 중인 아시아 문화심장터의 핵심공간이 될 전라감영(조선시대 전라도와 제주도를 관할한 관청) 복원공사가 이르면 다음 달부터 시작된다.전주시가 조만간 전북도 설계승인 등의 행정절차와 공사시행을 위한 사업자 선정에 나설 계획이어서 절차가 마무리되는 오는 4월부터는 전라감영 복원공사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오는 2018년 10월까지 계속될 이번 공사에서 관찰사가 집무실로 쓴 선화당과 내아, 관풍각, 연신당 등 전라감영 핵심 건물이 복원된다.내부는 아울러 통일신라시대부터 1951년 준공된 옛 전북도청사의 흔적까지 엿볼 수 있도록 꾸며진다.전라감영 복원 재창조위원들은 전날(24일) 진행한 회의에서 복원할 건물의 위치의 적합성과 각종 고지도, 문헌에 기록된 내용이 충실히 반영됐는지 등을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전라감영 조감도특히 그간 지표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통일신라∼일제강점기 기간 다양한 역사 흔적의 구성과 배치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모았다.앞서 시는 발굴조사에서 드러난 유구의 흔적과 각종 고지도 및 문헌을 통해 최대한 조선시대 전라감영의 원형을 찾는 데 주력했다.이 결과 전라감영 복원의 시점을 19세기로 정했으며 전라감영 공간의 변화에 따른 건물별 위치와 시대에 따라 변화는 건물의 형태 등을 통해 복원할 전라감영 건물의 뼈대를 완성했다.1921년 지어진 옛 전북도청사 부지와 건물은 조선시대에는 전라감영으로, 일제강점기에는 전북 행정의 중심지로, 1980년대에는 민주화운동의 거점 역할을 했다. 전라감영 복원사업은 2018년까지 선화당, 내아, 관풍각, 비장청, 연신당, 내삼문 등 6개 건물을 복원하는 사업으로 총 79억 6천만원이 투입된다. 복원이 끝나면 서편부지(옛 전북경찰청 부지)에는 문화시설이 조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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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정동 고분군서 6~7세기 신라고분 2기 발굴용인시는 기흥구 보정동 산121번지 일대 ‘보정동 고분군’에서 6세기말~7세기초 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고분 2기와 유물 15점을 발굴했다고 16일 밝혔다. ‘보정동 고분군’은 임진산성에서 삼막곡까지 이어지는 능선에 100여기의 삼국시대 고분이 모여 있는 대규모 고분군으로 이 지역에 대한 학술발굴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마북동과 보정동 일대 삼국시대 주거유적 및 할미산성, 석성산성과 함께 조성된 유적으로 삼국시대 용인지역 역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곳이다.한국문화유산연구원과 함께 실시한 이번 조사에서 2기의 석실분(돌을 쌓아 방처럼 만든 무덤)과 뚜껑이 있는 그릇(유개고배), 항아리 모양 토기(토기호), 쇠칼 등 15점의 유물이 발굴됐다. 축조방법과 형태 등을 분석한 결과 6세기말~7세기초 신라에 의해 축조된 고분으로 확인됐다. 발굴지역은 보정동 고분군 진입로에 위치해 있는데다 인근 주민들이 경작을 위한 농로로 사용하면서 일부 고분이 파괴돼 있어 훼손이 우려됐었다. 그러나 고분의 덮개돌이 주저앉으면서 내부가 도굴되지 않아 유물과 유구가 매우 양호하게 보존돼 있었다. 시 관계자는 “보정동 고분군은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 선조들의 무덤군으로 2002년 지표조사 후 일부 고분이 발굴돼 복원됐으나 문화재 보존과 정비를 위해 추진하는 학술발굴조사는 이번에 처음”이라며 “올해 상반기에 추가 발굴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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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촌락문서는 통일신라초기 695년것…'처(妻)' 서체가 증거"윤선태 동국대 교수, 목간학회 발표회서 '695년설' 거듭 주장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도 나오는 '신라촌락문서'는 통일신라시대 지금의 청주 부근인 서원경(西原京)의 촌락 경제 상황을 기록한 문화재다.가로 58㎝, 세로 30㎝ 크기의 두 장짜리 문서에는 4개 촌락의 명칭, 구역, 인구, 노비의 수, 말과 소의 수, 토지의 종류와 면적, 과실나무의 수 등이 자세하게 정리된 귀중한 유물이다. 신라촌락장적, 민정문서로도 불리는 이 문서는 현재 일본 왕실의 보물창고인 나라(奈良)현 도다이지(東大寺) 경내에 쇼소인(正倉院)에 있다.신라 촌락의 실상을 알려주는 이 문서의 내용은 우리말로 번역돼 소개됐으나, 제작 시기를 놓고는 695년설과 755년설, 815년설 사이에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신라촌락문서. [윤선태 교수 제공]이 중 통일신라 초기인 695년설을 제시했던 윤선태 동국대 교수는 지난 4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한국목간학회 정기발표회에서 신라촌락문서에 있는 '아내 처(妻)' 자의 서체를 근거로 다시 695년설을 주장했다.그는 앞서 1995년 발표한 논문에서 신라촌락문서에 '1월'(壹月)이라는 글자가 있는 점을 바탕으로 755년설과 815년설을 부정하고 695년설을 새롭게 제시했다. 7∼8세기에는 1월을 '정월'(正月)로 표기했는데, 695∼700년에만 정월을 11월로 옮겨 '1월'(壹月)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는 것이 주된 논거였다. 신라 금석문의 '아내 처' 자 비교. [윤선태 교수 제공]윤 교수는 이번 발표회에서는 '처' 자가 오늘날과 달리 '일 사(事)' 자 아래에 '여자 녀(女)'가 붙어 있는 형태인 점에 주목했다. 일본 역사학자 하타다 다카시(旗田巍)가 1959년 논문 '신라의 촌락'에서 형태가 이상하다고 의문을 제기한 글자이기도 하다. 윤 교수는 6세기 신라 비석인 울주 천전리 서석(525년, 545년)과 단양 적성비(550년 추정)에는 '아내 처' 자가 신라촌락문서와 같은 모양이지만, 8∼9세기 비석인 감산사 미륵조상기(719년)와 감산사 아미타조상기(720년), 흥덕왕릉 비편(872년 추정)에서 발견되는 '아내 처' 자의 서체는 오늘날과 동일하다고 설명했다.이어 "신라촌락문서와 같은 형태의 '아내 처' 자는 중국에서 수나라(581∼618) 때까지만 사용됐는데, 중국의 영향을 받은 신라도 8세기를 기점으로 현재와 같은 '아내 처' 자만 쓴 것 같다"고 말했다.신라촌락문서의 695년설을 재확인한 그는 "문서에서 인구 구성상 가장 나이가 많은 남성인 노공(老公, 60세 혹은 70세 이상으로 추정) 아래에 제공(除公)이라는 연령층이 있는데, 이 제공이 유난히 적다"고 지적한 뒤 "660∼670년대 삼국통일과 나당전쟁으로 많은 남성이 목숨을 잃은 영향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